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칸 전쟁 (문단 편집) == 영향 == 1, 2차 발칸 전쟁의 결과, [[러시아 제국]]의 외교정책은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다. 발칸 동맹의 형성을 추진하고 협조했던 국가는 러시아였다. 하지만 발칸 전쟁이 모두 종결된 시점에서 발칸 동맹의 일원인 국가들이 적대관계로 돌아섰기 때문에 동맹은 당연히 해체되었고, 발칸 동맹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러시아에는 큰 타격이었다. 거기에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관계도 틀어졌다. 러시아는 불가리아의 공격적인 태도에 질려버렸다. 불가리아군이 오스만의 마지막 방어선인 차탈차에 돌입했을 때 러시아는 불가리아군이 코스탄티니예를 공격할 경우 바로 전쟁 상태에 돌입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을 정도였다. 이후 親세르비아 태도로 일관한 러시아는 2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적대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던 러시아와는 당연히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불가리아는 反세르비아 교두보라는 가치를 강조하며 [[삼국 동맹]]에 접근하는 과거의 외교 방식으로 회귀했다. 이러한 전개가 되자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에서 고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러시아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1913년 이후였다. 발칸 반도는 [[부동항]]을 얻고 싶어했던 러시아에겐 매우 큰 의미가 있었고, 그 지역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세르비아를 놓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무조건적으로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수밖에 없게 되어 러시아 측의 외교수단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손발이 묶인 것이다. 그 후 발칸 반도에서 고조되는 긴장감과 갈등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1914년 7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 군의 비밀결사인 [[검은 손]]과 연계 된 [[가브릴로 프린치프|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사라예보 사건]]).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의 서막이었고, 러시아에는 '''파멸'''의 신호였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대규모 전쟁을 치를 준비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여 러시아 제국은 무너지고 소련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와 세르비아를 적으로 돌린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영토를 뺏어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맹국]] 측에 가담하고 지난번의 패전의 복수를 하자는 일념 아래 세르비아군, 그리스군, 루마니아군은 물론 발칸 반도로 원정 온 영국군, 프랑스군까지 바르며 발칸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불과 1년 전까지 적으로 싸우던 오스만 제국과 같은 편으로 싸우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쟁은 결국 [[협상국]]의 승리로 끝났고 불가리아는 전쟁에서 잘 싸웠음에도 결국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전쟁 전보다 영토를 더 잃어버렸다. 이 시기,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군가중 하나인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작곡 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